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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1

2007. 4. 17. 02:25 | Posted by liberto


"선생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새하얀 병실 안,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정(情)을 옆에 두고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힘듭니다. 이 병은 저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군요. 아직까진
이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단지, 단 한 번 이 병에 걸렸
던 환자가 살아난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만..."
"어떤 방법이죠? 정이가 살아나기만 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안경을 치켜올렸다.


"저, 담배 한 갑만 주세요."
편의점에 들어간 진(眞)이 카운터에서 쭈뼜댔다.
"죄송하지만 손님, 주민등록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아, 여기요."
"예, 확인했습니다. 어떤 담배를 드릴까요?"
"아무 거나 주세요. 저기, 저 거요."
"예, 이천 오백 원입니다."
"여기요."
"오천 원 받았습니다. 여기 거스름돈 이천 오백 원입니다."


"콜록, 콜록. 으..."
진은 불붙인 지 30초도 안 되는 담배를 비벼 껐다. 진의 눈길은 정이 입원해 있
는 병실을 향해 있었다.


"선생님. 정이, 저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글쎄, 아마 한 달 이상은 힘들 겁니다. 수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요."
진이 의사의 팔을 잡았다.
"선생님, 수술하면 정이 확실히 나을 수 있는 겁니까?"
"미안하지만, 장담할 순 없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단 한 번 수술이 있었고, 그 수
술은 성공했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조만간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젊은이, 환자를 저 상태로 오래 둬봤자 환자만 고생할 뿐입니다. 수술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환자를 편히 보내 주는 게 환자를 위한 길일 수 있어요."
진의 눈에 독기가 스쳐갔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정이는. 꼭.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달칵, 열린 문 안쪽에는 정이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승(承)이가 앉아 있었다.
"어, 진이 왔네! 정이는 기다리다 지쳐 잠들었어."
승이가 손을 들어 환영했다.
"그래? 아쉽네. 바빠서 잘 찾아오지도 못 하는데...그래도 네가 옆에 있어 줘서
다행이다."
"에이, 다행은 무슨. 정이는 맨날 너만 기다리는데, 나는 옆에 있어봤자 도움도
안 돼."
"그랬어? 정이도 너무하네. 멀리 있는 사람보단 곁에 있는 사람이 소중한 법인데."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지. 그런데, 의사가 뭐라고 했어?"
순간, 진의 눈가에 그늘이 스쳐지나갔다. 승이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별로 대단한 병은 아니래. 뭐래더라... 병 이름은 너무 어려워서 잊어버렸는데,
그냥 수술 하면 낫는 병이래. 근데, 급한 환자가 너무 많아서 일정 잡기가 어렵나
보더라. 정이 병은 느긋하게 수술해도 되니까 이해해달라고 하시던데."
"에? 그래도 먼저 입원한 사람이 우선 아냐? 의사도 참 너무하네."
"최대한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 사람이 있다는데 우리 생각만 할 순 없잖아.
조금만 기다리면 선생님도 수술 일정 잡아 주시겠지."
"넌 너무 착해서 탈이야. 좀 인간이 독한 면도 있어야지."
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성격인걸 뭐..."
"에휴...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냐. 하긴, 정이는 네 그런 모습에 반했지."
그 때, 진의 주머니에서 김종국의 한 남자가 흘러나왔다.
"네, 진입니다.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네. 곧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진에게 승이 말을 걸었다.
"가 봐야 돼? 정이 일어나면 얘기라도 좀 하고 가지."
"교수님 호출이야. 알잖아, 우리 교수님 성질 급한 거. 지금 안 가면 잘릴지도 몰라."
"알았어. 잘 가. 이따 정이 일어나면 너 왔다갔다고 얘기해 줄게."
"그래, 부탁해. 다음에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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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입니다. 대략 3편 정도로 완결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