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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페리 꽃 축제 - 1

2010. 7. 5. 11:22 | Posted by liberto
 붉은 달의 계절이 깊어지고 한 해가 끝나간다. 새해를 맞는 모든 도시가 그러하겠지만, 이곳 슈테른 시의 분위기는 한층 더 들떠있다. 곧 일 년에 딱 한 번 볼 수 있는 장관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시 전체에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미처 여관을 잡지 못한 축은 공터나 심지어 시 외곽에까지 텐트를 치고 이 근방에 머문다.

 이 추운 겨울에 밖에서 자는 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정을 강행하는 까닭은 일년에 딱 하루만 볼 수 있는 꽃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알려진 페리 꽃은 슈테른 시에서만, 그것도 일 년에 단 하루, 새해 첫날에만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슈테른 시의 여관 중 하나인 꽃처럼 내리는 눈도 일찌감치 '방 없음'이라 적힌 판을 문 앞에 세워두고 식당업만 하고 있다. 꽃처럼 내리는 눈도 근처 다른 여관들과 비슷하게 3층 높이에 1층은 식당으로 쓰고 있었다. 여관 주인 디엘린 씨 부부와 세 아이들(두 딸, 아들 하나)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바쁘게 움직이며 손님들을 대접하기 바빴다.

 딸랑, 문 위에 달아둔 방울이 소리를 내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용케 방울 소리를 들은 둘째딸 에네리스가 재빨리 문으로 달려나가며 손님을 맞았다.

 "어서오세요. 혼자 오셨나요?"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계절에 맞는 두꺼운 옷을 입고 커다란 배낭을 매고 있었다. 허리에 찬 장검이 평범한 여행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다.

 "조금 있으면 일행들이 올 겁니다. 저까지 네 명이죠. 그나저나 아름다운 아가씨, 나중에 시간 나면 저랑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어머, 칭찬 감사해요. 그런데 어떡하죠? 지금 저희 가게엔 네 분이 앉을 자리는 없는데요."
 "아차 내 정신 좀 봐. 아가씨 미모에 혹해서 용건을 잊었군요. 일행이 여기에 방을 예약했다고 하던데요."
 "예약한 분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바하마 셀티스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에네리스는 쪼르르 달려가 장부를 가져왔다.

 "아, 여기 있네요. 바하마 셀티스님 이름으로 이인실 하나 예약돼 있습니다."

 남자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응?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에네리스가 장부를 펼쳐 보여줬다.

 "여기 보시면 나와 있어요. 바하마 셀티스님, 이인실 하나."

 남자가 이를 갈았다.

 "이자식이... 무슨 짓을 해 놓은 거야..."

 딸랑딸랑. 또다시 문이 열렸다. 앞서 들어왔던 남자와 비슷한 옷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어서오세..."
 "바하마, 너 이자식!"

 앞서 들어온 남자가 튀어나가 바하마의 멱살을 잡으며 외쳤다. 목소리가 하도 커서 순간적으로 식당에 정적이 찾아왔다.

 "무슨 일..."

 안쪽에서 막내아들 란츠가 뛰어나왔다.

 "일 한두 번 하냐! 방을 하나만 잡으면 어떡해!"
 "켁, 조, 졸타, 일단 좀, 좀 놔줘. 숨막혀..."

 졸타가 멱살을 풀었다.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무슨 짓을 한 거냐."
 "아, 그 전에 고용주분들 먼저 방에 들어가시게 하자."

 바하마는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착착 일을 진행시켰다. 바하마는 얼른 밖에 있던 화려한 의상을 입은 부부를 데리고 들어왔다. 어느새 문가로 나온 엘레디아는 그 부부를 방으로 안내했다. 란츠는 부부가 타고 온 마차를 끌고간 후 말을 풀어 마구간에 넣었다. 에네리스는 바하마와 졸타를 식당의 자리로 안내했다. 졸타는 자리에 앉을 때까지 일단 참기로 했는지 이를 갈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