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곳
liberto

태그목록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장. 페리 꽃 축제 - 2

2010. 7. 8. 02:02 | Posted by liberto

 졸타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말했다.

 "자, 이제 차근차근 말해 봐. 왜 예약이 하나밖에 안 돼 있냐."

 졸타의 눈이 바하마를 잡아먹을 듯 번쩍였다. 바하마가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방이 하나밖에 없었거든."
 "다른 여관은?"
 "하나도 없던데."

 너무 깔끔한 대답에 할 말이 없는지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졸타였다.

 "그래, 지나간 일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왜 내가 방금 전까지 방이 부족하다는 걸 모르고 있었을까?"
 "당연하지. 내가 말을 안 했으니까."

 졸타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뒷목을 안마했다.

 "왜 말 안 했는데?"
 "깜박했거든."

 졸타가 손가락 관절을 꺾었다. 주변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뚫고 뚜두둑거리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퍼져나갔다.

 "혹시 오늘부터 한 주 동안 여기 머물러야 된다는 거 알고 있냐?"
 "응. 알아."
 "지금이 무슨 계절이지?"
 "겨울이지."

 졸타의 목소리가 점점 낮게 깔리기 시작했다.

 "이런 날 밖에서 자면 어떻게 될까?"
 "십중팔구는 얼어죽겠지."
 "그럼 혹시 따뜻하게 잘 곳을 알고 있다거나, 밖에서 자도 따뜻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거나, 하여튼 뭔가 대책이 있냐?"
 "없어." 

 졸타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아무 대책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이거지?"
 "바로 그렇지."

 갑자기 졸타가 벌떡 일어나더니 바하마의 멱살을 잡았다. 주변의 시선이 졸타와 바하마에게 집중되었다.

 "어쩌라는 거냐 지금! 우리 둘 다 밖에서 그냥 얼어죽을까?"
 "글쎄,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 일단 진정해 봐. 아참, 방 부족하다고 말해주는 거 잊어버려서 미안하다."

 졸타가 멱살을 놔 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설마 얼어죽지야 않겠지. 그럼 네가 그 '어떻게든' 이란 걸 해 봐."

 그 때 란츠가 음식을 내 오며 끼어들었다.

 "그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졸타와 바하마의 시선이 동시에 란츠에게로 향했다. 란츠가 말을 이었다.

 "손님들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신 것 같아서 좀 엿들었습니다. 제 방이 그다지 넓진 않아도 세 명 정도는 잘 만한 넓이가 됩니다. 괜찮으시다면 제 방에서 묵으시죠. 다른 방이 비면 바로 옮겨드리겠습니다."

 졸타가 말을 받았다.

 "거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군. 그럼 식사가 끝나면 방을 좀 보여주게. 바하마 너도 이의 없지?"
 "있을 리가 없지."
 "방값은 네가 내라. 대책없이 왔으면 합당한 댓가를 치뤄야지."
 "쳇, 알겠다."
 "식사가 끝나면 부르도록 하겠네. 방값은 후하게 쳐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이따 다시 오겠습니다."

 란츠가 물러간 후 졸타가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였다.

 "페리 꽃이란 게 그렇게 예쁠까? 듣기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던데."
 "볼 수 있는 시간이 짧아서 더 그런 거 아닐까? 새벽녘에 꽃이 피기 시작해서 다음 날 새벽녘이면 이미 다 떨어지고 없다잖아."
 "그나저나 내일 새벽같이 일어나려면 술도 조금만 마시고 일찌감치 자야지. 그놈의 꽃, 얼마나 예쁜지 어쩐진 모르겠지만 해 뜨기 전부터 피고 지랄이다냐. 좀 느지막히 피면 어디가 덧나서. 이 추운 겨울날 아침부터 밖에서 떨게 생겼네."
 "별 수 없지. 이미 결정된 거니까 좋게 좋게 생각해. 일단 밥이나 먹자. 식으면 맛 없다."
 "그러자. 내일은 피곤한 하루가 되겠구만."

 둘은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