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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달도 더 된 이야기다.
타이거 우즈의 섹스 중독이 온라인, 오프라인 할 거 없이 꽤 주목을 모았다.
며칠 전에는 우즈가 한 달 가량의 치료를 마치고 가족과 만났다는 기사도 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쳤지만,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꼭 치료를 해야만 하지?
우즈 본인은 그걸 원했을까?

내가 봤던 기사 어디에도 우즈 본인이 중독 치료를 희망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치료사들이 시키는 일도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우즈 본인은 중독을 치료할 마음이 별로 없는데 주변의 강권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약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이 무슨 권리로 그의 행동을 강제할 수 있는 걸까?
우즈가 섹스에 중독되든 게임에 중독되든 그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물론 우즈의 가족들은 그 권리가 있을 것이다. 특히 우즈의 부인은.)
우즈의 섹스 중독이 그의 직업(골프)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닌데.
(설령 악영향을 끼친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우즈의 행동을 강제할 권리는 없지만.)

우즈가 티비에 나오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하든 그건 그의 개인사일 뿐이다.
주변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우즈의 부인이 바가지를 긁든 이혼을 하든 따귀를 때리든, 알아서 하겠지.



사족
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 일체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옆집에 히키코모리가 살든 게이가 살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건 그들의 행동방식일 뿐이고,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서 좋은 사람이면 친하게 지내고, 나랑 안 맞으면 서먹서먹하게 지내면 되지.
(히키코모리는 개인적으로 만나는 게 불가능하겠지만.)

섹스든 뭐든 중독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 뭘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설령 마약에 중독됐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산다면 별 문제 없다.
(물론 마약에 중독됐을 때 멀쩡히 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진정 원하는 일이 마약에 절어 폐인처럼 생활하는 것이라면, 그건 그 사람 자유다.)

자신의 스타일을 찾기

2009. 3. 16. 08:25 | Posted by liberto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마지막 콘서트 DVD를 보던 중 인상깊은 말을 들었다.

그는 6,7살 때 자기 삼촌처럼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생각했고
10,11살 때는 누군가를 흉내내기보단 자신의 스타일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말을 듣고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던가?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던가?

다른 사람을 흉내내서는 일인자가 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행동은 할 수 없기에, 일인자를 따라해도 결국 잘 해봐야 이인자다.
그렇다면 과감히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비슷비슷한 사람 속의 특징 없는 사람으로 살아 봐야
재미없는 인생만 남게 될 테니.

개념있게 살아가기

2009. 2. 11. 23:56 | Posted by liberto
꽤나 폭넓은 제목을 정했다.

'개념'있게 산다는 게 뭘까?

물론 사람마다 이것에 대한 정의는 제각각이리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굳이 내 글에서 쓸 필요는 없을 테니 내 생각을 몇 자 적어보려 한다.

나에게 있어 개념있게 산다는 것을 한 마디로 줄이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것'이다.
아직도 너무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개념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개념없는 행동의 예를 몇 개 들어보겠다.

주로 청각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개념없는 행동의 첫 번째 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럴 때 발걸음 소리가 시끄럽게 난다면 거슬릴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러한 발걸음 소리의 주범은 대부분 하이힐.
미를 추구하는 거야 좋지만 도서관에 올 때는 좀 소리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 보면 좋지 않을까?

고성방가도 개념없는 행동에 포함된다.
신촌 먹자골목처럼 주변에 술집이 대거 포진해 있다면 그나마 이해가 되지만
주변에 주택가밖에 없는데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는 치들이 있다.
듣기라도 좋으면 혹시 모르겠지만, 이 치들은 대체로 듣기 거북한 소리를 지른다.
술을 먹더라도 좀 자제를 하는 모습들을 보이면 좋겠다.

기차, 지하철, 버스에서의 시끄러운 대화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후각적인 피해를 주는 사람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몸에서 냄새가 난다든가 하는 사람은 딱히 못 봤지만,
냄새가 나는 물건(툭 까놓고 말하면 담배)을 당당히 길거리에서 들고다니는 치들이 있다.
남이사 싫어하든 말든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불어 이 치들은 대체로 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는 무신경함을 자랑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도보에 쓰레기통이 거의 없는 현실과도 유관하다.)
필자의 지인 중 하나는 '쓰레기 청소하는 사람의 일거리를 만들어 주어 고용창출의 효과가 있다'
라고 주장하여 필자를 상당히 열받게 한 적이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요새 길거리를 보면 수많은 쓰레기가 널려있음을 알 수 있다.
눈에 비교적 잘 띄지 않는 담배꽁초부터 시작해서, 일일이 종류를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다양한 쓰레기를 길바닥에서 찾을 수 있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행위는 절대 정당화가 될 수 없는, 없어져야 할 행위이다.

개인적으로 시각 공해(이걸 공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다.
소음 공해가 있다고 귀를 막거나 냄새가 난다고 코를 막는 것은 힘들지만
보기 싫은 것이 있으면 안 보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내가 보기에 혐오스러운 것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겐 취향, 멋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과는 별로 연관성이 없지만, 물자를 아무 생각 없이 낭비하는 것도
개념 없는 행동에 포함된다고 본다.
가까운 곳에서 예를 찾아보자면, 요새 근무 끝나고 집에 들어가 보면 거실에 불이 켜 있는 경우가
꽤 자주 있다.(두 번에 한 번 정도. 참고로 필자를 하숙을 하기에 누가 그런 짓거리를 하는지 알아보기도 어렵다.)
새벽 6시 반에 불이 켜져 있는데...
대관절 새벽에 누가 얼마나 돌아다닌다고 불을 켜 놓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뭐, 거실이야 그나마 어두운 것을 무서워해서 불을 켜 놓는다고 치자.
화장실 불은 대체 왜 켜 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끄는 것을 잊어버렸으리라고 추측해 본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 정도면 어떤 행동이 개념 없는 행동에 포함되는지 알 거라 믿는다.


이번 글을 작성하며 여러 모로 슬퍼졌다.
대체 위에 언급된 개념 없는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 뭘 했나 궁금해진다.
사람들이 초등학교 바른 생활 책(요새도 바른 생활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도덕 책.)에 있는 내용만
신경쓰면서 살아도 내가 이런 글을 작성할 필요도 없어질텐데...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읽을지...ㅠ.ㅠ)께 제안한다.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고쳐나가자고.

인간의 관찰력에 대한 고찰

2009. 2. 11. 06:12 | Posted by liberto
매우 신기한 일이지만 우리 편의점에선 담배를 팔지 않는다.
(일정 구역 내에서 담배를 팔 수 있는 가게는 하나로 제한되던가 뭔가 하는 법률이 있다는데...
여하튼 안 파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있다.
참고로, 길 건너 바로 옆집에서 담배를 팔고 있다.)

지금껏 담배 안 파는 편의점은 본 적이 없기에 나도 굉장히 신기해하고 있다.
(참고로 나는 비흡연자이고, 담배는 혐오한다.)

여하튼, 흡연자가 많긴 많은가 보다.
하루 8시간을 근무하는데 매일 평균 12명 정도는 담배를 찾는다.
참고로, 평균 손님 수는 80명 안팎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인간의 관찰력에 매우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편의점 문짝에 당당하게 '담배없음'이라는 표지를 두 개나,
그것도 친절하게 보통 사람들 눈 높이(170cm가량)에 맞춰 붙여놨는데
하루에 열 명이 넘는 사람이 그걸 못 보고 들어와서 담배를 찾는단 말이다.

여기서 매우 사람을 열받게 하는 인간 군상을 한 부류 발견할 수 있는데,
뻔연히 담배 없다는 표지를 보고 들어와서
(들어올 때 시선이 그 쪽을 두어 번 훓는 걸 내가 봤는데!
혹은, 들어오면서 '어 여긴 담배 안 파네' 하고 들어오면서!)
'담배 진짜 안 팔아요?'라고 물어보는 부류다.
그럼, 있는 걸 없다고 써 놨을까?
(이런 부류는 대체로 문만 살짝 열고 고개만 살짝 들이밀고 물어본다.
없는 거 뻔연히 알면서 그러지 말라고 좀!)
꼴에 손님이고 난 힘없는 점원이라 그냥 적당히 웃으면서 없다고 알려주는데,
속으로는 열불이 난다.

얘기가 딴 쪽으로 잠깐 새나갔는데...

문 밖에서 담배 없음 표지를 보고 돌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내 알 길이 없으나
많~이 잡아서 손님의 두 배(160명 정도) 가량이 문을 열려고 시도한다고 봤을 때
담배를 찾는 손님은 80명 정도, 그 중에 들어와서 물어보는 사람이 10명이 좀 넘는다.
적게 잡으면 12.5% 정도의 사람들, 대략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감으로 추산하자면
50% 정도의 사람들은 문에 뭐가 붙어있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일단 들어온단 뜻이다.

지상으로부터 170cm에 무언가가 있으면 장님이나 키가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이상
눈에 들어오긴 들어올텐데,
내가 본 손님 중에 그걸 못 발견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사람은 없었는데...

눈에 들어온다고 다 보는 게 아닌가 보다.
개인적으로 문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눈높이에 뭔가 글씨가 있는데 이걸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귀찮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위에서 말한 부류, 읽고도 무시하는 짜증나는 부류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자고로 문자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고, 우리 나라의 문맹률과 손님들의 나이대,
신촌이라는 지리적 특이성(손님들 대부분은 학생 아니면 회사원이다.)을 고려하면
의미를 못 알아들을 사람들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찌 문자를 그렇게 완벽하게 무시할 수 있는가.
(일부의 경우, '그럼 어디서 담배 파나요?'라고 묻는 경우는 제외다. 물어보러 들어올 수도 있지.)

좀 두서없는 글이 됐는데, 앞으로 관찰력을 좀 더 기르는 연습을 하자는 게 이 글의 요지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관찰하고 추구하는 거야 예술가나 철학자가 할 일이고...
일상 생활을 하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글씨가 써 있으면 읽어봐 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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