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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9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2. 2009.01.13 산책
  3. 2008.12.17 白骨難忘
  4. 2008.12.14 낚시 1
  5. 2008.11.19 클래식 음반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2009. 1. 19. 04:37 | Posted by liberto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누군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 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씁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나는 만 22 년 5 개월 2 일 동안 뜨거운 적이 있던가.

서정주 시인은 말했다.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고.

나를 키운 건 무엇이었던가.
앞으로는 불꽃에 나를 맏겨 다른 사람에게 뜨거워져야지.

산책

2009. 1. 13. 21:00 | Posted by liberto
보름달이 떠
달 그림자가 방 안에 들어오는 날,
무언가에 홀린 듯 산책을 나간다.

알 수 없는 풀벌레 소리
자욱히 안개처럼 피어오른 길은
달빛을 받아 은빛 회색으로 빛나고
하늘에는 조각구름이 달빛을 반사한다.

물가로 내려가면
차분히 흐르는 물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져 음악이 된다.

풀밭에 누워 위를 쳐다보면
하늘을 가로지른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성과 직녀성이 보이고
이유 없는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진다.

누가 볼새라 얼른 눈가를 부비고
눈물 한 방울만 강물에 띄워둔 채
돌아오는 길에는 달 그림자만 뒤를 따른다.


-------------------------------------------------------------

내 싸이에 있는 것을 퍼온 것.
2004년 9월 2일자로 올라와 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을까ㅡㅡ? 고3때였는데...

白骨難忘

2008. 12. 17. 05:05 | Posted by liberto

하이얀 白骨이 누워있오.
저것은 나의 아들이오.

아니, 저것은 나의 아들이 아니오.
당신의 기억 속에서 까맣게
썩어문드러진 한 줌의 뼛조각이오.

밤하늘에 아들의 비명이 울려퍼지오.
당신은 듣지 못했나 보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오.
촉촉히 젖은 별이 촘촘히 박혀있구려.
-------------------------------------------------------------------------------------------
白骨難忘(백골난망) :
백골이 되어서도 잊을 수 없는 일을 말함.

낚시

2008. 12. 14. 01:28 | Posted by liberto

밤하늘에 별빛이 박혀 있다.

소년은 오늘도 빗자루를 들고
발 아래 자욱한 귀뚜라미 소리를 쓸어낸다.
귀뚜라미가 별빛을 가려
별빛의 수만큼 물방울이 떨어진다.

소녀가 우산을 들고 걸어온다.
소녀는 오지 않고 우산만 걸어온다.
소년은 우산을 접고 집에 들어갔다.

클래식 음반

2008. 11. 19. 04:23 | Posted by liberto
요새 클래식 음반에 관심이 생겼다.
mp3파일로 듣는 누가 연주했는지, 누가 지휘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음악 말고
어떤 지휘자가 어떤 오케스트라와 어떤 독주 연주자와 함께 언제 녹음했는지 알 수 있는
그런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문제는 그것을 위한 기초가 없다는 것이다.
클래식에 대해 무지하다느니하는 그런 기초 말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치(간단히 말하면 CD플레이어)가 없다는 말이다ㅠ.ㅠ

모 인터넷 쇼핑몰(인X파X)에서 알아보니 10만 원 정도의 무난한 오디오들이 있었다.
고민된다.
미래의 목표(바이올린 구입)를 위해 돈을 모을 것인가, 현재의 음악 감상을 위해 돈을 사용할 것인가.

군대를 언제쯤 가게 되는지가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슬픈 현실이다. 미래를 위한 고민을 해도 부족할 20대 초반에 군대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은.